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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백조와 물밑 발길질

기사승인 2017.06.27  19: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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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커플 역을 맡아 알게 된 동갑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가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쉬는 시간에 잠깐 보자고 해서 내가 그의 일터 쪽으로 갔다.그는 아직 일이 조금 남았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놈이 고깃집 숯불을 피우고 불판도 닦고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조금 기다려 마주 앉게 되었다. 그는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의 근황을 물었다.

나는 당시 연기, 그 중에서도 발성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때마침 소리의 울림이 좋은 이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우리 둘은 고깃집 한 구석에 앉아 서로의 생각을 치열하게 주고받았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더욱 요점만 격렬히 얘기 할 수 있었다. 

그도 밥을 챙겨 먹어야 저녁 일도 할 것 같아서 나는 용건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랴부랴 일어났다. 멋쩍은 듯 배웅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그는 결혼을 해서 부인과 둘이 살고 있다. 부인도 예술가다. 본업이 없을 때는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생업에 뛰어들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가 짠하지만 멋있었다.

역시 작품에서 부부로 만나 십년 째 우정을 나누는 동료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텔레비전만 틀면 광고에 나왔었다. 영화, 드라마, 광고 가릴 것 없이 스케줄이 항상 꽉 차 있던 그를 부러워했었다.

언젠가부터 좀 뜸 하다 싶더니 몇 년 전부터 낮에는 학원에서 학생들 연기지도를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도움이 필요 할 때 그에게 렛슨을 받으면 확실히 좋아진다. 

평소 그는 일부러 어리바리한 콘셉트로 항상 모자란 듯 겸손 한 듯 행동하여 주변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재주가  있다.

그러나 연기 조언을 할 때만큼은 예리한 게 제대로 선생님이다. 허투루 연기하겠다고 이 세계로 온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고민하고 연습하고 채찍질 하는 그다. 우리는 가끔 맥주 한잔을 놓고 결론도 없는 연기 개똥철학을 펼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여배우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런데 난 그들과 친해지기가 어렵다. 좀 가까워 졌다 싶어도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어떤 일들을 하며 생활을 유지 해 가는지 모르겠다. 결혼을 했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남배우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나부터도 일 없을 때 어떻게 지내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다. 백조의 물밑 발길질처럼 겉으로 아름다운 모습만 보이고 싶은 마음 동감한다.

지난달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던 백상예술대상 축하공연 `꿈을 꾼다'를 보며 울지 않은 연기자는 없을 것이다. 주로 단역으로 인기와는 상관없이 열정으로 일하는 무명배우 33인의 무대였다. 5분 정도 이어진 공연은 그 어떤 스타의 무대보다도 감동적이었다.

그들의 노래는 음정 박자 가창력과 아무런 상관없이 진실하고 간절했기에 더욱 빛났다. "저 33인의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우린 왜 저기도 못 꼈지?" 하던 유채목 언니의 농담 섞인 궁금증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내 가슴속 요동치는 이무기 한 마리만 느껴졌을 뿐.

"문신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나이 지긋한 타투 장인이 치는 대사다. 2009년 개봉관에서 본 후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나만의 명대사 목록 1위다.

내가 겪는 이 끝없는 기다림이라는 고통이 연기자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을 견딜 수 없다면 난 이 길을 걸을 자격이 없다.

흔히들 묻는다 "연기 어렵지 않으세요?" "그쪽일 하는 거 힘들죠?"

대답은 하나다. "일이 없는 게 힘들 뿐이죠"

사진 =  크크스튜디오 큐보스픽쳐스 제공

< 저작권자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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