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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자기황 폭발 사고 곳곳에서 터지다

기사승인 2017.08.25  09: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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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황(自起황)은 20세기 초, 30여 년간 온갖 희한한 폭발 사고를 남기고 거짓말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꿈속 환각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1927년 1월 영주동에 사는 허춘기(61)는 자기황 폭발로 가슴을 너무 크게 다쳐 백제병원에 실려간 지 2시간 반 만에 절명했다. 그는 서면에서 자기황을 구해 가지고 있었다. 자기황은 그 위험성을 알고서도 다루기 힘들었다. 1937년 10월 동래군 기장면에서 박경삼 부부가 짐승 잡는 자기황을 제조하다가 잘못으로 폭발해 전신에 중상을 입고 위독했다.

자기황은 화약과 성냥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딱성냥이 어디든지 마찰되면 불이 붙듯 자기황의 마찰력은 위험천만했다. 여우 사냥을 나가려다 시간이 일러 자리에 잠시 눕는 순간, 몸에 지닌 자기황이 마찰로 폭발해 사냥꾼이 즉사하거나, 처마에 끈으로 묶어 달아둔 자기황을 쥐가 물고 가 찾다가 실수로 밟는 바람에 쾅쾅 터져 2명이 다치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자기황은 짐승을 잡기 위해 동그란 환(丸)으로 만들었는데 누런빛이 나는 엿 사탕, 밤알, 떡처럼 보였다. 배 고픈 시절, 이것은 참으로 치명적이었다. 1932년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의 송영오(48)는 동래읍으로 이사 가는 같은 동네 이복이의 짐을 지고 왔다가 다음 날 아침 7시께 장독간에 숨겨 놓은 자기황을 엿인 줄 알고 깨물다가 그것이 폭발해 즉사했다.

1930년대는 떠들썩한 여우 목도리 전성시대였는데 여우 한 마리의 가죽값은 1년 농사 수확과 맞먹었다. 여우 잡는 자기황을 '여우 과자'라고 했다. 폭발 사건이 끊임없이 터졌다. 젊은 부인(18)이 빨래를 하고 돌아오다가 길거리에서 과자 같은 밤알을 주워 깨물다가, 청년과 아이들이 나무 하러 간 숲에서 주운 자기황을 입에 넣고 씹다가 폭발해 즉사했다. 충북 보은에서 12살짜리는 할아버지가 사 둔 자기황을 사탕인 줄 알고 깨먹다가 목숨을 잃었다. 못 먹던 시절, 입으로 섣불리 깨문 '배고픔'은 일순간 생명과 함께 폭발했다.

그렇게 위험했건만 어이없는 폭발 사고는 '한계치'에 이르기까지 자꾸 일어났다. 1933년 3월 부산발 소식이 떴다. 창녕군에서 집주인 백소세와 고용인 문안오는 술을 많이 마시고 대취하여 자기황을 깨물면 폭발이 된다, 안 된다를 놓고 시비가 붙었다. 그러다가 백소세가 자기황을 깨문 결과, 참연한 소리와 함께 자기황이 터지면서 그의 입 주변은 분쇄됐다. 크게 놀란 그의 아내가 나머지 자기황을 마당에 던졌는데 그걸 와서 먹은 돼지가 또 큰 폭발 소리와 함께 죽어 나자빠졌다. 뻔한 위험은 기어이 깨물어 터지고야 말았다. 그것은 시대의 한계였을까, 인간의 한계였을까. 각 시대는 저마다의 자기황이 있을 거다. 우리는 지금 어떤 '자기황'을 깨물려 하고 있는가.

 

최학림 논설위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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