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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3월 부산 천호여관서 발화된 불이 백제병원 건물로 옮겨붙어

기사승인 2017.11.17  11: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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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70년대로 훌쩍 건너뛰어 본다. 1972년 3월 12일 일요일 아침 6시 30분께 부산 동구 초량동 텍사스 골목 천호여관 2층 건물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203호 빈방에서 손님을 받기 위해 꽂아둔 전기장판이 과열돼 불이 난 것이다. "불이야!" 투숙 중이던 외국인 선원들과 접대부들이 맨몸과 속옷 바람으로 혼비백산해서 뛰쳐나왔다. 소방차 20여 대가 출동했으나 소화전 2곳에서는 물도 나오지 않고 고가사다리도 작동이 잘 안돼 불은 더 크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북서풍이 불었다. 불은 삽시간에 옆 건물로 번졌다. 옆 건물 5층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30여 명의 학생은 책도 꺼내지 못하고 그냥 뛰쳐나오는 소동을 벌였다. 몰려든 주민들은 "빨리 불을 꺼 달라"며 발을 굴렀다.

천호여관에서 발화된 불이 사정없이 옮겨붙은 바로 이 옆 건물이 옛 백제병원 건물이었다. 1927년 지어진 입원병동 건물에 이어 1928년 5월에 완공된 본관 건물이었다. 1시간 10분 동안 불은 탐욕스럽게도 5층 건물 3분의 2 정도를 삼켜 버렸다. 지붕이 불에 다 타 버려 신문 사진에서는 뻥 뚫린 건물 창을 통해 불에 그을린 검은 골조와 멀건 하늘까지 보인다. 다음 날 부산의 신문 사회면들은 화재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여관서 전기장판 과열 불' '화마가 삼킨 부산 최초의 고층' '구 봉래각 등 전소' '사라져버린 부산 명물'. 

1928년 지어질 당시 '부산 최고(最高) 건물'이라는 찬사를 받은 뒤, 부산현대사의 온갖 풍상을 이겨낸 44년 세월도 한순간에 잿더미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화마의 공평하고 냉엄한 무서움이었다. 

당시 이 건물은 옛 백제병원 건물보다는 옛 봉래각 혹은 신세계 빌딩으로 통했다. 요릿집 봉래각 시절 객실 120개에 접대부 50명을 헤아렸는데 일본과 만주에도 알려져 부산 관광의 필수 코스였다고 한다. 1965년께부터 거의 텅 빈 '도깨비집' 수준으로 방치돼 오다가 화재 1년여 전에 주인이 바뀌어 탁구장, 독서실, 각종 사무실이 들어가 있었다. 이 화재 후 본관 건물의 벽돌 외벽은 오늘날 모습처럼 시멘트 외벽으로 변해 버렸다. 화마의 얼룩과 상처였다. 

이 건물이 백제병원으로 온전히 재발견되기 위해서는 또 30년 세월이 지나야 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길모퉁이를 지키던 이 건물의 문화재적 가치가 비로소 얘기되기 시작했다. 초량에 무엇이 있는가. 바로 옆에 있던 남선창고는 2008년 부서져 버렸다. 지금 초량일식가옥도 위험에 처해 있다.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저 백제병원 건물이 세월을 이겨 내며 '경계 공간' 초량을 돌올하게 지키고 있다. 아, 백제병원이여! 

최학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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