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로마서 8:37', 교회 모순 통해 '인간의 원죄' 대한 고민 던지는 종교 영화

기사승인 2017.11.17  17:40:44

공유
default_news_ad2

세속과 신앙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전혀 다른 세계다. 각자의 체계를 가진 우주들이라고 해도 좋겠다.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 박애, 원죄 등의 개념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성에게 '사랑한다'는 고백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은 같은 문장이지만 완전 다른 의미로 발화된다. 우리가 간혹 종교를 오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형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두 목사가 대립 중인 교회가 있다. 원로목사 측은 현 강요섭(서동갑) 목사의 부정을 들춰 그를 끌어내리려 하고 요섭은 이에 대응할 팀을 꾸린다. 전도사 기섭(이현호)은 아내의 오빠이자 평소 존경하던 요섭의 요청을 받아 팀에 합류한다. 하지만 얼마 뒤 요섭의 성추행 문제가 거론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그를 향한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얼핏 보면 한국교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 같다. 교회의 사유화, 내부의 권력 투쟁, 정치적 수 싸움이나 언론에 대응하는 방식 등이 매우 세밀하고 사실적이라 그렇게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초중반 기섭의 시점에서 교회의 시스템의 모순을 꼬집던 영화는 피해자 중 한 사람인 지민의 등장과 함께 원죄 앞에 인간이라는 질문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그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현실을 가감 없이 던진 쪽에 가깝다. 영화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로마서 8장 37절의 의미를 더듬어간다.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에 관한 복음서다. 예수가 이미 행하신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죄의 자각이다.

여기 죄에 대한 세 가지 반응이 있다. 요섭은 일말의 반성도 없는 거짓 선지자이다. 그는 교회 개혁이란 명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한다. 지민은 철저히 기도에 매달리는 신도다. 영화 속 피해자들은 지민처럼 맹목적 순종으로 가짜 평화를 갈구한다. 마지막으로 지섭은 인간의 원죄를 인지하고 회개하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에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요섭의 위선을 고발하려 하지만 이에 실패하는데, 세속적인 실패가 오히려 종교적인 각성의 계기가 된다. 이를 '죄는 요섭이 짓고, 회개는 기섭이 행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오해가 발생한다. 16일 선보인 신연식 감독의 '로마서 8:37'는 단지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 철저히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인간의 죄성을 탐구하는 그야말로 '종교에 관한 영화'다. 다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가리고, 함부로 용서를 말하고, 가짜 믿음을 설파하는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비종교인들도 충분히 숙고할 여지를 남긴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360 VR

1 2 3
item37

최근 화제가 된 뉴스

default_side_ad2

生生한 현장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